
처음으로 세이코 오토매틱 시계를 구입하게 된 이후, 웹에서 이것저것 찾아보기도 하면서 관련지식도 늘고 나름의 구체적인 취향 비슷한것도 생기게 되었다. 그동안 시계도 이것저것 많이 만져봤다. 10만원 미만의 저렴한 오토시계부터 학생 신분으로는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대의 제품까지. 그나마 지금 미국에 있어서 이베이질(...)하기가 수월했고, 저렴한 중고품을 구하기가 용이했다. 몇번의 바꿈질을 거듭한 끝에 가장 오래 보유했던 시계는 두 개. 오메가 씨마스터 청판 쿼츠와 세이코 프리미어 문페이즈 흰판 검정스트랩(사진 오른쪽). 둘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수 없는 저렴한 가격에 구했다. 전자는 중고로 이베이에서 샀고 후자는 시리얼이 지워진-_- 새 제품을 정가의 30%되는 정도의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다.
씨마 청판 모델은 처음 구했을때 상당히 맘에 들었다. 브레이슬릿의 착용감도 훌륭하고 유니크한 디자인 또한 좋았다. 오토매틱 모델과 거의 똑같은 외형을 1000불 가까이 저렴한 가격에 즐길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세이코 문페이즈 역시 처음으로 사용해본 복잡시계였고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좋았다. 키네틱 무브먼트도 신기했고. 그런데.. 둘다 그게 그다지 오래가질 않았다. -_- 씨마 청판의 독특한 컬러가 첨엔 그렇게도 좋던 것이 시간이 조금 지나니 무난하게 차기엔 조금 한계가 느껴지게 되었다. 가령 청바지에 푸른색 계열의 상의를 입은 날엔 시계까지 블루로 가긴 좀 그런 상황 같은. 세이코 문페 역시 상당한 두께감이 드레시한 느낌을 많이 죽이는 것 같았고 기본 스트랩의 품질이 계속 보다보니 영 거슬리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불만이었던건.. 공교롭게도 둘다 모두 쿼츠 모델이었다. -_- 내가 오토매틱 시계를 생각보다 많이 선호한다는 사실을 이 두녀석을 들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몇번의 고민 끝에 씨마는 다시 처분했다. (문페도 팔고 싶지만 시리얼이 지워진 제품이라 이베이에 올릴 수가 없다. ㅠㅠ) 결국 맘에 안들어서 처분하는게 사실이지만, 비슷한 급의 다른 시계를 사고 싶진 않았다. 어차피 또 새로 사도 조금만 지나면 금방 싫증이 날거라는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_- 게다가 시계 값은 해를 거듭할수록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상황이고, 현재 판매되고 있는 모델들 역시 몇년전에 비해 말도 안되게 비싸졌기 때문에 그 돈을 주고 도저히 사고 싶지가 않다. 그렇다고 눈높이를 조금 낮춰 해밀튼이나 론진을 알아보자니 또 성에 안차고.. 그래서, 세이코 문페와 돌려가며 차기 적당한 '매우 저렴한' 걸로 돌아가기로 했다. 다만 몇가지 조건이 있는데..
- 브레이슬릿 모델이면서 가죽줄질이 용이해야 함.
- 논크로노 다이얼 모델이지만 너무 드레시하지 않은, 캐주얼에도 잘 어울려야함.
- 다이얼 컬러는 가급적 블랙 또는 다크그레이.
- 오토매틱 무브먼트 탑재, 그리고 시스루백. ㅎㅎ
한마디로 오메가 PO 내지 신형 아쿠아테라같은 시계를 찾는셈. -_-; 사실 이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할만한 시계가 과연 얼마나 있을 것이며, 게다가 150불 미만의 저가 모델중에 과연 있기나 할까 싶은게 사실이지만 (내가 봐도 좀 심하긴 하다 -_-) 그래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열심히 이배희 여사님을 방문해보았으나 역시.. 결국 타협하고 또 타협해서 결정한건, 요즘 한창 세이코 블랑팡으로 인기가 높은 SNZH55(사진 왼쪽). 블랑팡의 유명한 Fifty Fathoms와 같이 베젤을 크리스탈로 덮은 디자인의 시계로, 세이코5 라인업으로 브랜드 내에서도 가장 저렴한 오토매틱 시계라 150불 미만의 가격으로 충분히 구할 수 있다. 검판 모델이며 줄질도 나름 용이하고 (오리지널 FF 역시 스트랩 모델이 존재함) 시스루백이니 그럭저럭 요구사항을 만족하는것 같기도 하다. 여기는 겨울이 그닥 춥지 않아 브레이슬릿도 상관없지만, 날이 많이 추우면 케블라 스트랩으로 줄질하면 괜찮을듯.
결국 지금 내 손에 남은건 세이코 시계 두개다. 역시 가격 대비 성능은 세이코만한게 없는듯. 저렴한 세이코5시리즈 오토매틱 시계들을 보면, 과거 쿼츠 혁명으로 기계식 시계들을 말라죽게 했던 장본인들이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저렴하고 가격대 성능비 높은 오토매틱 시계를 선보이고 있는 것이 좀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어쨌든 오토매틱 시계를 좋아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나같은 사람들에겐 세이코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존재인듯.
시계는 앞으로도 계속 관심가지고 좋아할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당분간은(어쩌면 평생? -_-) 그냥 저렴하고 개성있는 시계 한두개로 버틸 예정. 앞에서 언급했듯 순간 혹해서 덥썩 지르고 나면 금방 싫증나기 쉽기에 걍 멀찍이서 구경만 하고 가끔씩 기회되면 부티크 가서 손목에 함 올려보고 그럴 생각. 어찌보면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취미일수도 있고 사실 워낙 고가의 시계들이 많다보니 직접 구입을 염두에 둔다면 무리한 지출이 뒤따를수밖에 없는것도 사실이지만, 꼭 비싼 시계를 직접 소유하지 않더라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중고거래가 활발하긴 하지만 가품의 위험성이 항상 존재하고, 신품은 앞에서도 말했듯 미친듯이 치솟는 가격에 비해 감가상각률이 (로렉스를 제외하고) 상당히 높아서 미국 돈으로 네자리 가격의 시계는 아마 앞으로도 구입할 일은 없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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