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스러움

7월말에 제출한 논문의 리뷰를 며칠전 받았다. 이미 지난 봄에 한번 물먹은 논문이었고, 라이팅부터 이것저것 나름 신경 많이 써서 고쳤기에 내심 약간의 기대가 없지는 않았었는데..

...리뷰의 결과는 처참했다. ㅠ.ㅜ

총 5개의 리뷰를 받았고, 몇몇 리뷰어들은 무슨 내용인지도 잘 모르는듯 했으나, 모르는 그들의 눈에도 novelty 부족은 눈에 띄었나보다. 문제는 한 페이지 가까이 빼곡히 적어놓은 한 리뷰어의 면도날같이 신랄한(그리고 다소 arrogant한) 코멘트를 읽고는 그야말로 떡실신된 기분이었다. 좀 괜찮은 학회는 리뷰가 일단 공개되고 나서 그 리뷰의 내용에 대해 저자에게 다시 한 번 답변할 기회를 주는 rebuttal이라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그 리뷰어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얼굴이 화끈거릴만큼 수치스러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토록 신랄하게 지적받은(factual incorrectness라는 매우 직설적인 표현까지 써가면서) 내용들이, 정말 너무나도 간단한 내용임에도 말도 안되는 착각에서 비롯된 아이디어였던 것이다.

물론 double blinded review라 '공식적'으로는 저자는 리뷰어가 누군지, 리뷰어는 저자가 누군지 모르지만, 이 바닥도 그다지 넓지는 않기에 리뷰 몇 번 받아보면 대충 누군지 짐작이 간다. (그 리뷰어가 누군지도 대단히 강력한 심증으로 짐작이 간다. ^^) 어쩌면 그쪽도 내가 누군지 알 수도 있을 것이다. 부끄러웠다. 나도 나지만 지도교수님께도 대단히 수치스러운 일일수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전반적으로 그다지 좋은 리뷰가 없어서 결과야 뻔하긴 하지만, 이렇게 흠씬 두들겨 맞고도 제대로 맞받아치치도 못한 채 '그래, 니 말이 맞다'고 무릎꿇어야 하는건 상상 이상으로 치욕스러운 경험이다. 물론 말도 안되는 내용으로 까기만 하는 리뷰도 있지만, 내가 하는 분야에 빠삭한 사람들이 하는 '지적질'은 그저 뻘소리가 아닐 확률이 대단히 높다. (내가 심증으로 짐작하는 그 리뷰어도 이쪽에서 소위 '잘나가는' 몇손가락 안에 드는 교수다.) 

지난번 리뷰에서는 설명이 clear하지 않다고 해서 이번엔 최대한 명료하게 설명하려고 했더니만, 설명을 너무 clear하게 해서 다들 너무 이해를 잘했는지-_- 생각지도 못한 태클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그래도 우리쪽에선 one of top 3 conferences고, 라이팅이 horrible하다는 코멘트는 없었다는 걸로 위로를 삼아야 하나. -_-; 뭐, 나도 사람인지라 실수할 수도 있는거고, 개망신(...) 한번 당하고 나서 큰 오류 하나 발견한셈 쳐야겠지만.. 충격이 적지는 않다. 

에휴. 어쨌든 rebuttal 다 썼다. 교수님 feedback만 받고 나서 얼른 내야지. (내봤자 달라질건 없겠지만 ㅠ.ㅠ)

by 伯松 | 2009/09/26 12:11 | freeboard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baiksong.egloos.com/tb/5080618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