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kpad X31

2004년 봄, 연구소에서 받은지 만 5년 반째 사용중인 노트북이다. 12인치 LCD에 약 1.6kg쯤 하는 씽크패드를 대표하는 서브노트북이었고, X시리즈는 지금까지도 계속 출시되고 있는 인기 모델이다. 센트리노 1.4G, 256M RAM, 40G HDD가 달려있는 모델인데 지금은 HDD는 250G로, 메모리는 1G로 업그레이드되어있다. 연구소에 있을 때도, 유학 나와서 공부하면서도 정말 만족하면서 잘 써왔다. 윈도우 XP에서 그냥 일반적인 문서/오피스 작업, 인터넷 정도 하기에 전혀 무리가 없었고, 크기와 무게 역시 갖고 다니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요즘 나오는 넷북보다 조금더 크고 무겁긴 하지만 출시된지 5년이 넘었음에도 성능 면에서는 넷북보다 우수하다. 게다가 이미 명성이 자자한 씽크패드의 쫄깃한 키감은 여태껏 사용해본 노트북 중 단연코 최고다.

전에 블로그에도 올렸듯이, 그동안 잘 써오던 이놈이 몇달전부터 조금씩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블루스크린이 뜨거나 먹통이 되었고, 가끔은 부팅이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더 짜증나는건 항상 그러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번씩. 참다 참다 못해 결국 새 맥북을 지르고 말았는데, 참 웃긴건 새 노트북이 생겼는데도 5년을 넘게 써온 이놈에 대한 애착(내지 집착?)은 더 심해졌다는 거다. 어떻게든 (큰돈 안들이고) 요놈을 살려내고픈 마음이 굴뚝같았다.

문제가 될 수 있는 부품들(램, 하드디스크)을 이미 교체했음에도 해결되지 않는걸로 보아 아무래도 시스템보드 쪽 문제인 것 같았다. tpholic(구 ibmmania)에서 좀 찾아보니 X31 모델이 보드 칩셋 쪽에서 문제가 종종 생긴다는 말이 있었다. 보드를 갈아야 하나 싶어서 eBay를 찾아보니 웬만한 중고 보드도 100불 정도 하는듯했다. 이미 새 노트북이 있는 상황에서 100불은 쓰기 좀 아까운 돈이었고, 중고 보드가 얼마나 안정성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보드 구입은 일단 보류하고, 밑져야 본전인셈 치고 청소라도 좀 해줄겸 노트북을 완전히 분해하기로 마음먹었다. 하드디스크, 메모리 업그레이드할 때 조금 만져보긴 했지만 본체 맨 안쪽에 붙어있는 메인보드를 분리해내기 위해서는 그 위를 덮고 있는 모든 부품들을 다 들어내야 했다. Hardware Maintenance Manual(줄여서 HMM이라 부름)을 데스크탑 모니터에 띄워놓고 하나하나 분해를 하기 시작했다. 매뉴얼은 생각보다 너무나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었고 부품들도 엉성한것 하나 없이 완벽하게 딱딱 들어맞아서 의외로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결국 LCD를 제외한 본체 모든 부품들을 다 분해해서 책상 한가득 널어놓고 메인보드를 들어냈다. 5년만에 바깥공기를 처음 쐬어주며 먼지도 털고 굴러다니던 써멀구리스도 다시 발라주고는 다시 조립에 들어갔다. 조립은 분해의 역순. 훌륭한 매뉴얼 덕분에 나사 하나 남는 것 없이 완벽하게 다시 조립했다. 전원을 연결하고 켜보니 윈도우 잘 뜨고 아무 문제 없었다.

분해해서 청소라도 좀 해줬던게 효과가 있었는지, 다행히도 아직까지 아무 문제 없이 잘 돌아가고 있다. 하드웨어적인 문제가 맞다면 청소 정도로 해결될리는 없을테고, 물론 예전에도 가끔씩 생기는 문제였기에 아직까지 100% 안심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전보다는 좀더 안정적인것 같다. 내친 김에 윈도우7으로 업그레이드 했는데 뭐 역시나 문제 없이 쌩쌩. 주로 학교 연구실 책상에 놓고 쓰기 때문에 앞으로도 큰 문제 없이 당분간 쓸수 있을것 같다. 집에도 몇번 가져오고 여기저기 가지고 다녀보기도 했는데 still no problem. 

스스로도 너무 신기한건, 이미 구닥다리가 되어버린(물론 살때는 200만원이 넘는 나름 고급 노트북이었지만) 이 노트북에 내가 왜이렇게 관심을 쏟는지 나도 모르겠다는거. 게다가 새 노트북이 있는데도 말이다. 근데 확실히 뭔가 특별한게 있는것 같긴 하다. 단순히 오래 쓰면서 손에 익었기 때문인건 아닌것 같고, 싸고 비싸고 오래되고 안되고를 떠나 '대단히 잘 만들어진 제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분해해보면서도 알게 됐지만, 부품 하나하나가 굉장히 공들여 설계된 것이 여타 노트북들과 확연히 차이가 나는것 같다. tpholic 가보면 중고 X31 매물이 아직까지도 거래가 되고 있다. 심지어는 더 오래된 기종들까지도. 출시된지 이렇게나 오래된 노트북을 찾고 아끼는 사람들이 여전히 이렇게 많은걸 보면, 씽크패드가 명품은 명품인가보다.

Acer나 Lenovo(요즘 씽크패드를 만들고 있는 바로 그 레노버)에서 파격적으로 저렴한 가격의 노트북들을 앞다투어 공격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메모리 4G에 350G SATA HDD가 달려있는, 게다가 13인치 LCD에 무게 5파운드 미만의 경량 노트북을 500불 정도면 살 수 있다. 성능 괜찮은 저가 노트북들이 많이 출시되다보니 나 역시도 잠깐 이런 모델들에 관심이 갔었던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 씽크패드를 분해해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씽크패드를 구입하게 될 것 같다. 조금 비싸긴 하지만, 사고 나서 5년이 넘게 애착을 가지며 사용할 수 있다면 오히려 그게 더 저렴한 것일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by 伯松 | 2009/10/18 12:25 | freeboard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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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1mokiss at 2009/10/25 01:26
예전에 이 회사를 다녀서 본의 아니게 tp를 꽤 오래 썼었어요. 저는 어째 좀 무거운 모델들을 주로 썼었는데, 당시만 해도 꽤 고급사양의 제품이어서 무리없이 잘 썼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은 hp의 아담한 제품을 가끔 쓰는데 노트북이건 데스크탑이건 가격이 참 많이 싸진 것 같아요. 저로서는 나이들면서 점점 가볍고 군더더기없는 모델을 찾게 되는 것 같기는 합니다.
Commented by 伯松 at 2009/10/27 02:22
IBM에서 근무하셨나보네요. ^^ 저두 노트북은 일단 작고 가벼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13인치보다 큰 노트북은 고려대상에서 무조건 제외입니다. 글구보니 예전에 비해 노트북 가격도 정말 많이 내렸더라구요.
Commented by cineport at 2009/10/25 14:28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 댓글도 x31로 작성중입니다.
Commented by 伯松 at 2009/10/27 02:23
감사합니다. ^^ X31 쓰면 쓸수록 정말 좋은 노트북인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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